아기를 겨우 재우고 휴대폰을 켰는데 오늘 걸음 수가 2,800보뿐이다. 하루 종일 안고 달래고 집 안을 오갔는데, 숫자만 보면 아무것도 안 한 사람 같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만보기를 확인하는 직장인도 비슷하다. 지금도 피곤한데 남은 걸음을 언제 채우나 싶다.
걷기 살빼기를 시작할 때 나는 만 보부터 목표로 잡는 걸 권하지 않는다. 이미 지친 하루에 숙제를 하나 더 얹기 쉽기 때문이다. 먼저 살펴볼 건 오늘 몇 보가 모자랐는지가 아니라, 내일도 걸을 수 있는 시간을 어디에 넣을지다.
만 보를 못 걸은 날에도 운동은 남는다
만 보는 지방이 타기 시작하는 경계선이 아니다. 9,000보를 걸었다고 효과가 사라지지 않고, 만 보를 넘겼다고 체중이 저절로 줄지도 않는다.
걷기는 하루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체중 변화는 식사량, 수면, 활동량이 함께 만든 결과다. 산책 뒤 허기가 져서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면 체중 변화가 작을 수 있다. 반대로 체중계가 잠잠해도 같은 길에서 숨이 덜 차고 오래 걸을 수 있게 됐다면 체력은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평소 3,000보 정도 걷는 사람이라면 바로 만 보에 맞추기보다 짧은 산책을 더해보자. 일주일쯤 걸어보고 발바닥과 무릎이 편하면 시간을 조금 늘린다. 처음부터 완벽한 숫자를 정하는 것보다 실제 생활에서 유지되는 양을 찾는 편이 낫다.
걷기 칼로리 계산은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검색창에 걷기 칼로리 계산을 입력하면 숫자가 제각각 나온다. 계산기가 틀렸다기보다 체중, 걷는 속도, 오르막 여부를 서로 다르게 가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30분을 걸어도 몸무게가 다르면 소모량이 달라진다. 신호등 앞에서 자주 멈춘 산책과 평지에서 계속 빠르게 걸은 운동도 같지 않다. 그래서 계산값은 식사량을 정확히 결정하는 영수증으로 쓰기 어렵다.
걷기 칼로리 계산 공식으로 30분을 계산해보면
운동 에너지 소비를 추정할 때 흔히 쓰는 식은 다음과 같다.
소모 열량(kcal) = MET × 3.5 × 체중(kg) ÷ 200 × 시간(분)
MET는 활동 강도를 나타내는 값이다. 조용히 쉬는 상태를 약 1로 보고, 움직임이 얼마나 힘든지 숫자로 표현한다. 걷기의 MET는 속도와 경사에 따라 달라진다.
체중 60kg인 사람이 30분간 걷고, 그때의 강도를 설명용으로 3.5 MET라고 가정해보자.
3.5 × 3.5 × 60 ÷ 200 × 30 = 약 110kcal
이 110kcal는 걷는 동안 쓴 총에너지의 추정치다. 가만히 있어도 쓰는 에너지가 포함돼 있다. 같은 시간 쉬었을 때보다 추가로 쓴 양을 대략 보려면 식에서 MET 대신 MET에서 1을 뺀 값을 넣는다. 이 예에서는 약 79kcal다.
스마트워치의 ‘활동 칼로리’와 계산기 숫자가 다르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총소모량을 표시하는지, 휴식 때의 소모량을 뺀 활동량을 표시하는지부터 확인하자. 기기마다 추정 방식도 다르다.
계산은 대략적인 규모를 보는 데 쓰고, 운동한 만큼 더 먹어도 된다는 허가증으로 쓰지는 말자.
걸음 수 칼로리 계산에는 보폭과 시간이 필요하다
걸음 수만 알 때는 이동 거리를 먼저 추정할 수 있다.
거리(km) = 걸음 수 × 한 걸음의 길이(m) ÷ 1,000
한 걸음의 길이가 0.65m라면 5,000보는 약 3.25km다. 이 거리를 시속 4.5km로 계속 걸었다고 가정하면 약 43분이 걸린다. 이후 체중과 적절한 MET를 앞의 식에 넣어 열량을 추정한다.
이때 0.65m는 예시다. 키가 같아도 걷는 습관에 따라 보폭은 달라진다. 더 가깝게 계산하고 싶다면 거리를 아는 평지 구간을 걸으며 걸음 수를 재보면 된다. 거리(m)를 걸음 수로 나눈 값이 내 한 걸음의 평균 길이다.
하루 동안 집과 사무실에서 모인 5,000보에는 멈춘 시간과 짧은 이동이 섞여 있다. 이를 43분간 연속으로 걸은 운동과 똑같이 계산하면 오차가 커진다. 걸음 수 칼로리 계산의 결과보다 실제로 얼마나 오래, 어떤 속도로 걸었는지가 더 유용할 때가 많다.
숨이 조금 차는 10분을 하루에 끼워 넣는다
빠르게 걷기의 기준을 시속으로만 맞출 필요는 없다. 말을 이어갈 수는 있지만 노래를 부르기는 어려운 정도를 생각하면 쉽다. 가슴이 아프거나 어지럽고 숨이 지나치게 차면 멈춰야 한다.
일반 성인은 중간 강도 유산소 활동을 주당 150분 이상 하는 것이 권장된다. 빠르게 걷기도 여기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오늘부터 매일 30분을 채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짧게 나눠 걸어도 도움이 되고, 현재 활동량이 적다면 몸에 맞게 천천히 늘릴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자리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건물 주변을 10분 걷는다. 퇴근할 때는 한 정거장을 무조건 걸으려 애쓰기보다 집 근처 평탄한 길을 10분 더 돈다. 하루가 꼬이면 한 번만 걸어도 된다.
시간을 정할 때는 ‘틈나면’보다 ‘점심 식판을 반납한 뒤’처럼 앞에 오는 행동을 붙이는 편이 실행하기 쉽다. 일정표에 새로운 운동 시간을 만드는 대신 이미 있는 이동을 조금 늘리는 방식이다.
미세먼지가 나쁘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실내 복도나 쇼핑몰처럼 걸을 수 있는 공간을 이용해도 된다. 집 안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때도 바닥에 물건이 없는지, 미끄럽지 않은지 살핀다. 날씨 때문에 하루 쉬었다면 다음 날 평소 양으로 돌아오면 된다.
출산 후에는 걸음 수보다 걷고 난 몸을 본다
출산 후 걷기는 회복 상태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진다. 합병증 없는 출산 뒤 몸이 편하다면 가벼운 걷기를 시작할 수 있지만, 제왕절개를 했거나 출혈·통증 등 문제가 있다면 담당 의료진과 활동 범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처음에는 집 앞 평지를 짧게 다녀오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걷는 동안 괜찮았는지만 보지 말고, 돌아온 뒤와 다음 날의 상태도 살핀다. 골반이 묵직하게 처지는 느낌, 소변 샘, 상처 통증, 오로 증가가 생기면 양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진료 때 상담하자. 많은 출혈이나 흉통,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은 즉시 진료가 필요한 신호다.
유모차를 밀 때는 손잡이를 잡으려고 허리를 오래 숙이지 않도록 높이를 맞춘다. 속도를 높이겠다고 보폭을 억지로 벌릴 필요도 없다.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을 칼로리 소모 요령으로 삼는 건 권하지 않는다. 회복 중인 몸에 부담이 크고 넘어질 위험도 있다.
수유 중에는 운동량을 늘리면서 식사까지 급격히 줄이지 말자. 수유와 회복에 필요한 에너지가 있다. 밥을 거르고 커피로 버틴 날에는 추가 산책보다 한 끼를 챙기는 일이 더 급할 수 있다.
산후 걷기의 양은 임신 전 기록이 아니라 지금 몸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정도로 정한다. 밤새 여러 번 깼다면 그날은 쉬어도 된다.
열심히 걸었는데 그대로라면 저녁을 살펴본다
걷기를 시작하면 ‘오늘 운동했으니까’라는 생각이 따라오기 쉽다. 산책 뒤 마시는 달콤한 라테나 퇴근 후 집어 먹는 간식이 잦아지면 추가로 쓴 에너지가 쉽게 채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저녁밥을 없애지는 말자. 점심을 대충 먹고 오래 걸은 날, 밤 10시에 허기가 몰려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밥과 함께 달걀, 두부, 생선, 살코기 같은 단백질 식품을 챙기고 채소를 곁들여 식사부터 안정시키는 편이 낫다.
배달 음식을 먹는 날에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음료를 물로 바꾸거나, 음식이 많으면 먹기 전에 일부를 덜어둔다. 걷기로 모든 식사를 만회하려고 하면 산책 시간이 점점 벌칙처럼 느껴진다.
체중은 하루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짠 음식을 먹은 다음 날이나 생리 전에는 수분 때문에 늘 수 있다. 비슷한 조건에서 잰 체중의 몇 주 흐름을 보자. 산후에는 부종과 회복 과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꾸준히 걸어도 체중 추세가 그대로라면 식사와 음료, 주말 활동, 수면을 함께 살핀다. 무릎이 아플 만큼 걷는 시간을 늘리기 전에 조정할 부분이 보일 수 있다.
내일도 신을 수 있는 운동화를 현관에 둔다
오늘 할 일은 앱의 목표를 만 보로 바꾸는 게 아니다. 내일 점심 뒤 걸을 평탄한 길 하나를 정하는 일이다. 구두를 신는 직장인이라면 회사에 편한 운동화를 두고, 아기와 나간다면 중간에 쉬거나 바로 돌아올 수 있는 짧은 동선을 고른다.
기록도 가볍게 남기자. 걸은 시간과 걷고 난 뒤 몸 상태면 충분하다. 여유가 생기면 출산 후 회복 상태와 관절 상태에 맞춰 의자에서 일어나기 같은 근력 운동도 더할 수 있다. 일반 성인은 주요 근육을 쓰는 근력 운동을 주 2일 이상 하는 것이 권장된다.
걷기 살빼기를 오래 이어가고 싶다면, 오늘 많이 걸었다는 뿌듯함만큼 내일 발이 편한지도 챙겨보자. 현관에 운동화를 꺼내두고, 다음 산책은 조금 아쉬울 때 끝내보는 것도 괜찮다.